
미국 의료 전문지 Neurology Today에 따르면, 미국신경학회(AAN) 지원 연구팀이 신경과 진료에서 웨어러블 기기 활용에 대한 임상 가이드라인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웨어러블 기기의 신경과 진료 접목 가능성을 보여주며, 한국 독자들에게 해외 의료 기술 발전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신경과 진료의 새로운 지평: 웨어러블 기기
애플 워치, 오라 스마트 링 등 웨어러블 기기의 기능이 고도화되면서, 이를 신경 질환 진료에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논의가 의료계에서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미국신경학회(AAN)의 지원을 받은 연구팀은 신경학 전문지 ‘Neurology’에 신경과 진료 내 웨어러블 기기 활용에 대한 임상 가이드라인 논문을 게재했습니다. 이 논문은 심박수·부정맥 스크리닝, 뇌전증 발작 감지, 두통 관리, 수면 모니터링 등 네 가지 주요 영역에서 활용 사례와 기존 연구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미네소타 대학교 의과대학 신경학과 교수이자 논문의 주 저자인 사라 베니쉬(Sarah Benish) 박사는 연구의 계기에 대해 “근거 기반 의료 가이드라인을 만들 문헌이 부족한 영역에서도 환자들은 클리닉에 와서 조언을 구한다. 이러한 공백을 메우기 위해 학회에 자문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웨어러블 기기는 바로 그 ‘공백’ 중 하나로 부상했으며, 베니쉬 박사는 AAN의 지원을 받아 4명의 전문가와 공동 논문을 집필했지만, 이는 시장의 모든 웨어러블 기기를 망라한 것은 아니며 빠르게 변화하는 분야의 현 시점 임상 가이드라인임을 명확히 했습니다.
핵심 4가지 임상 영역에서의 활용 가능성
**심박수 및 부정맥 스크리닝**: 현대 스마트워치 대부분은 광전맥파(PPG) 기술로 심박수를 측정합니다. FDA 승인을 받지 않은 기술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며, 안정시 동성 빈맥이나 운동 중에는 심박수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지적됩니다. 뇌졸중 위험을 높이는 심방세동(AFib) 감지에는 애플 워치나 핏빗이 높은 정확도로 불규칙한 맥동을 감지할 수 있음이 연구로 입증되었습니다. 스마트폰과 연동되는 휴대용 심전도(ECG) 기기 ‘카디아(Kardia)’는 AFib 감지에 대해 FDA 승인을 받았지만, 많은 시판 기기는 아직 인증을 받지 못했고, 12유도 임상용 기기에 비해 정확도에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뇌전증 발작 감지 및 예측**: 뇌전증 환자 활용 분야에서는 발작 감지, 유발 요인 파악, 발작 예측, 기타 관리 지원에 대한 응용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이 분야는 아직 발전 초기 단계지만, 미국과 유럽에서는 일부 기기가 발작 감지 용도로 승인되었으며, 가속도계·피부 전기 활동 센서·PPG를 결합하여 뇌파(EEG) 측정에 필적하는 정확도에 도달했습니다. 존스 홉킨스 대학교 의과대학의 그레고리 크라우스(Gregory Krauss) 교수는 애플 워치용 발작 감지 앱 ‘에피워치(EpiWatch)’의 공동 창립자로, 이 앱은 2025년 말 FDA 승인을 받았습니다. 크라우스 교수는 스웨덴 전국 조사에서 전신 경련 발작 환자가 혼자 수면 시 급성 사망(SUDEP) 위험이 현저히 높아진다는 점을 들어, 간병인 알림 기능이 SUDEP 예방에 기여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오탐지(False Positive)를 줄이기 위해 놀이기구, 농구, 드럼 연주 등 다양한 동작 데이터로 에피워치 개발 훈련을 진행했다고 밝혔습니다.
**두통 및 편두통 관리**: 두통 분야에서도 여러 웨어러블 기기가 연구 대상이며, FDA가 일부를 승인했습니다. 바이오피드백을 이용한 편두통 환자 대상 접근법이 많으며, 초기 연구에서는 유망한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또한, 활동 기록(Actigraphy)을 통해 두통 환자의 움직임과 두통 발작의 연관성을 분석하는 기술 연구도 진행 중입니다. 이 영역에서는 초기 연구 단계에서 데이터 수집 방법 자체가 과제로 지적되기도 했습니다.
**수면 모니터링**: 스마트워치나 스마트링을 이용한 수면 모니터링에 대한 관심은 최근 급증했습니다. 가속도 센서 등을 결합한 민간 제품은 수면 클리닉에서 사용되는 의료 등급 장비와 비교해도 비슷한 정확도를 보이는 것으로 검증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한계점도 명확합니다. 수면 여부 감지는 대체로 정확도가 높지만, 각성 시간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어 임상적 수면 장애 환자에게 사용하기에는 검증이 불충분하다는 평가입니다. 반면, 집안 침실에서 측정이 가능하다는 점은 클리닉 평가에서는 얻을 수 없는 장점이기도 합니다.
실제 적용을 가로막는 3가지 장벽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프란시스코(UCSF)의 라일리 보브(Riley Bove) 부교수는 “많은 웨어러블 도구가 개발되고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었음에도 실제 진료에 사용되는 도구는 극히 적다”고 지적하며, 확산을 막는 세 가지 주요 장벽을 언급했습니다.
첫째는 **인터페이스 문제**입니다. 보브 부교수는 “하루에 10~15명의 환자가 각기 다른 웨어러블을 사용하고 있다면, 바쁜 임상의가 모든 시스템에 로그인하여 데이터를 확인하고 진료에 활용할 효율적인 수단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둘째는 **설계 프로세스 문제**로, “도구는 얻고자 하는 정보에 맞춰 만들어졌지만, 의사나 환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먼저 듣고 설계된 것이 아니다”라는 지적입니다. 이는 인간 중심 설계 과정을 거치지 않은 개발이 사용의 어려움의 근본 원인이라는 의미입니다. 셋째는 **근거 문제**입니다. 보브 부교수는 “그 데이터를 갖는 것이 환자의 결과(Outcome)를 바꿀 수 있는지 아직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녀가 공동 주임 연구자로 참여하는 BRIDGE 정밀 의학 대시보드 프로젝트는 웨어러블 데이터를 임상의가 보기 쉽게 시각화하고, 이 데이터가 실제 치료를 변화시킬 수 있는지 연구 기반으로 평가하는 시도입니다.
웨어러블 데이터 활용의 추가적인 과제들
베니쉬 박사는 웨어러블 데이터가 일부 환자에게 과도한 불안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습니다. “알림이나 불필요한 데이터를 받음으로써 극도로 불안해하는 환자도 있다. 그런 사람에게 웨어러블을 권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 생각해야 한다”고 그녀는 말합니다. 오보(False Positive)가 쌓이면 불필요한 검사나 의료비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덧붙였습니다.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의 서터 헬스(Sutter Health) 소속 미날 바누셜리(Minal Bhanushali) 박사는 ‘알림 피로’ 문제도 지적합니다. “의사를 알림으로 넘쳐나게 하면 곧바로 알림 피로로 이어진다”고 강조하며, 광범위한 임상 사용을 위해서는 전자 차트와의 호환성 및 개인 정보 보호 메커니즘도 필수적이라고 보았습니다. 또한, 보험 상환의 불확실성 때문에 많은 의료기관이 웨어러블 관련 투자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 역시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힙니다.

연속 혈당 모니터(CGM)에서 배우는 미래 모델
바누셜리 박사는 웨어러블 활용의 참고 모델로 연속 혈당 모니터(CGM)를 제시합니다. “CGM은 환자에게 실시간으로 개별화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당뇨병 관리를 변화시켰다. 보행을 측정할 수 있는 웨어러블을 이와 동일하게 신경 질환, 특히 파킨슨병에 응용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이 그녀 연구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2024년부터 애플 워치와 애플 헬스킷 데이터를 파킨슨병 관리에 활용하는 실증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PD 컴패니언(PD Companion)’이라는 앱 개발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이 앱은 떨림, 이상운동증, 보행, 낙상 데이터를 수집하며, “신경과 의사에게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형태로 이 데이터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탐구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바누셜리 박사는 임상 활용을 위한 두 가지 단계를 제시했습니다. 첫째, 수집·전송되는 데이터가 정확하고 고품질임을 확인해야 하며 규제 당국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둘째, 얻어진 신호 중에서 환자와 의사에게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것을 특정하고, 행동으로 이어지는 알림이나 디지털 바이오마커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을 정리하는 구현 프레임워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기술 선행, 의료 및 정책이 뒤따라야 할 때
이번 AAN 논문은 웨어러블 기기가 신경과 진료에 기여할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임상에 본격적으로 적용되기 위해서는 데이터 정확도 향상, 의사·환자에게 사용하기 쉬운 인터페이스 설계, 그리고 실제 환자 결과 개선으로 이어지는 근거 축적이 필수적이라고 정리했습니다.
베니쉬 박사는 “스마트워치는 점점 더 스마트해지고 있다. 작고, 다기능이 되며, 배터리도 오래간다”고 말하며, “이러한 웨어러블 기기가 장차 체내에 이식되는 기기로 진화하여 더 많은 데이터를 얻게 될 가능성도 있다”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웨어러블 기술의 가능성이 확장되는 가운데, 의료·정책·임상 운영 체계가 이러한 기술 발전을 따라잡을 수 있을지가 앞으로의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웨어러블 기기는 신경과 진료에 혁신적인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이 미국 사례는 기술적 진보만큼이나 실제 임상 환경에서의 적용을 위한 체계적인 준비와 고려가 중요함을 시사합니다.
